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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연구 활동

[논평] 4차 산업혁명과 유아교육, '사람, 장소, 환대'의 교육

작성자 유아교육과 작성일 2021.05.10 11:40 조회수 322

이 글은 2018년 4월 인천광역시 교육청 '유아교육소식지 40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소식지에 실린 글은 편집되어 분량이 줄어 원글을 올려 놓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유아교육은 어떻한 방향을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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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유아교육, '사람, 장소, 환대'의 교육.


                                                                        김명하(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1차산업혁명은 유통혁명을 이루었고, 19세기의 대량생산체제는 제조업의 혁명인 2차산업혁명을 가져왔습니다. 3차산업혁명으로 명명되는 디지털 아이티 혁명은 공간의 벽을 허물고 전 세계의 사람들을 촘촘한 정보의 관계망으로 묶는데 성공했습니다. 4차산업혁명은 3차산업혁명의 결과인 아이티 기술을 통해 유통과 제조업의 새로운 혁명을 이끌 것인란 분석이 전문가들의 예측입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사물의 지능화, 이를 바탕으로 한 유통과 제조의 개인화는 기존의 노동공간을 축소시키고 소멸시킬 예정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패스트푸드점의 자동주문 시스템, 스마트은행, 스마트 공장 등은 이미 현실화 된 4차산업혁명의 눈에 보이는 사례입니다. 변화의 속도는 우리의 예상보다 빠를 것이고, 그 결과가 어떨지는 현재의 인식틀 안에서는 예측불가능합니다. 영화 ‘her’에서와 같이 누적된 대화의 패턴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읽고 심지어 감정에 공감하기도 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고, 영국 드라마 ‘humans’에서처럼 가사, 육아, 자녀와의 대화에서 지치거나 실수하지 않는 인공지능 가사도우미 로봇이 부모를 대체하는 것도 가능해 보입니다. 이러한 4차산업혁명에 대한 사례나 전망에는 생산성 향상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 상징되는 기존의 산업혁명과 달리,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기술이 편의를 넘어 인간의 일자리나 관계성을 위협하는 형태로 올 것이란 불안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노동을 통한 자본의 축적, 이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형성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불안입니다. 세 번의 산업혁명은 시장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축했습니다. 시장자유주의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를 최대한의 가치로 여깁니다. 자유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개인에게 귀속시킵니다. 욕망하거나 욕망하지 않는 것, 욕망을 위해 경쟁하거나 경쟁하지 않는 것, 경쟁에서 이기거나 지는 것, 모든 것들이 개인의 자유이면서 개인의 책임입니다. 이러한 문화는 그대로 교육분야에 투사됩니다. 조기교육열풍, 서울대중심주의, 스펙쌓기, 과잉경쟁 등은 여전히 우리 교육의 현실입니다. 전인교육이란 수식어를 무색케 하는 유아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협력보다는 경쟁, 공유보다는 독점, 관계보다는 지식을 통한 개인의 욕망 실현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기존의 방식이 4차산업혁명이 진행된 사회에서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거란 전망이고, 이러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교육은 기존의 방식으로 4차산업혁명을 대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4차산업혁명이란 기실 사람과 기계,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물과 사물의 역동적인 관계망을 통해 만들어지는 혁명입니다. 이 관계는 매우 다채롭기 때문에 관계가 만들어 내는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누구도 예측불가능합니다. 답이 없다는 것이지요. 20세기 교육이 답을 찾는 교육이었다면, 21세기 이후 4차산업혁명시대의 교육은 새로운 관계망 속에서 펼쳐질 다양한 사건들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몸과 마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핀란드는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기본소득은 노동이 없이도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국민에게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아직 실험단계이고 전면실행까지는 면밀한 검토의 과정이 필요하나, 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여러 국가와 공동체에서 실제적 가능성 논쟁을 불러왔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례로 청년수당에 대한 실험이 한참입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성남의 청년배당, 서울의 청년수당, 부산의 청년디딤돌카드 등 전국 9개 광역 및 기초 지자체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로봇세는 MS창업자인 빌게이츠가 2017년 2월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지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인간과 같은 일을 하는 로봇의 노동에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알려진 개념입니다. 로봇세는 인공지능로봇의 도입으로 인한 실직의 속도를 늦추고 기본소득, 청년수당과 같은 공적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 청년수당, 로봇세 등은 지난 백년간 풍요와 함께 온 소득의 양극화, 삶의 양극화 등 시장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간과해온 삶의 가치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부인 동시에, 인간의 노동력 가치가 로봇의 노동력을 앞서는 것이 불가능한 4차산업혁명 시대의 대안적 경제정책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인간 노동력의 상당 부분이 인공지능 사물로 대체되는 사회에서 기존과 다른 방식의 가치가 필요한 셈입니다.      


이번 학기, 유아교육과의 한 수업에서 사회학자 김형경씨의 ‘사람, 장소, 환대’를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했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노동력 가치에 따라 도구화되고 파편화되는 시점에서 교육은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온화한 경멸을 숨긴 연민도 아니고, 그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따라 조건부로 제공하는 환대도 아니라는 것. 인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가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빼앗지 않는 것, 이유를 묻지않고 복수하지 않는 절대적 환대를 온전하게 보내는 것이라는 저자의 결론에 대다수의 학생이 동의했습니다. 물론 절대적 환대는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해서 파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지향으로 삼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본소득, 청년수당, 로봇세 등은 기존의 소유관념으로는 동의하거나 실행하기 어려운 주제들입니다. 4차산업혁명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보완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라면, 변화된 체계 하에서 가장 인간다운 사람의 가치를 고민하고 확장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유아교육의 관점에서 보자면 교육이론, 교수-학습 방법, 누리과정에 기초한 교과서적인 예비유아교육 시스템뿐 아니라, 절대적 환대, 인간의 본질과 가치 등의 철학적 주제를 중요한 교육의 지향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쟁을 조장하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공유와 협력을 강조하는 평가와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의 선행된 경험이 유아교육을 점차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느닷없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평생을 목수로 살아온 59세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질환으로 실업급여가 필요하지만 관공서의 복잡한 절차는 신청조차 쉽지 않습니다. 영국의 복지제도는 선진적인 정책 시스템은 갖추었지만 이를 사용하고 활용해야 할 ‘사람’에 대한 일상적 고민은 배제되어 있는 셈입니다. 산업혁명은 매번 더욱 복잡하고 첨단화된 과학으로 오지만, 우리가 교육을 통해 고민하고 사유해야 하는 주제는‘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입니다. 그가 3차산업혁명의 끝트머리에서 외친 말은 도래할 4차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오늘의 교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일 겁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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