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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연구 활동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

작성자 유아교육과 작성일 2024.03.11 19:15 조회수 33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3.5 전문가 칼럼.

https://blog.naver.com/noworry21/223103310922

 

 

- 어린이 정책을 더 이상 성인을 위한 서비스로 말하지 말라

2016년 8월 인천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던 6개월 영아는 기도 폐쇄로 숨졌다. 2018년 서울, 2021년 대전, 2022년 화성에서는 각각 3명의 영아가 무리하게 낮잠을 재우려던 교사나 원장의 부주의로 인해 죽임당했다. 2016년 4월 특수학교 통학차량에서 장애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7세 유아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2016년 7월 광주에서는 통학차량에 갇힌 3세 영아가 뇌 손상을, 2018년 7월 동두천에서 통학차량에 방치된 4살 유아가 사망했다. 2020년 1월에는 7개월 영아가 2살 된 영아에게 인중을 물어뜯기는 사고가 어린이집에서 발생했고, 2020년 10월에는 어린이집에서 친구와 부딪힌 6살 유아가 사망했다.

전교조 ‘2022 어린이 생활과 의견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생 10명 중 9명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들 중 2개 이상의 사교육을 받는 비율은 65%가 넘었고 사교육 주요 과목은 영어와 수학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연령은 지속적으로 하향화되어 2017년 기준 5세 84.2%, 2세 36%가 사교육을 받았다. 소위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2017년에 비해 2022년 71.1% 증가하며 ‘광풍’이라 불릴 정도로 급증했고 대학 등록금보다 2배 비싼 고액 교습비에도 입학을 위한 또 다른 사교육을 양산하면서까지 성행 중이다.

통계청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의하면 아동·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었고, 그 비율은 2015년부터 매년 증가해 지난해 기준 12-14세는 인구 10만 명당 5명, 15-17세는 인구 10만 명당 9.5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2017년 7.29점에서 2020년 7.19점으로 하락했고 이는 OECD 30개국 가운데 27위로 최하위에 속한다.

어린이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담은 노키즈존은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여성 양육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또한 맘충과 같은 단어 등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재생산된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대통령은 어린이 300여 명을 영빈관으로 초대해 함께 쿠키를 만들고 세계 최고 양육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여당과 야당 가릴 것 없이 어린이가 행복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국회의원의 다짐도 매해 그랬듯 넘쳐났다.

지난 4월 10일 교육부는 유치원 교육과정을 기존 9시에서 8시로 앞당기고 방과 후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유아교육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초중고도 0교시를 없애 아동청소년의 수면과 아침식사를 보장하는데 3-5세 유아의 교육과정을 8시로 앞당기겠다는 정부안에 교육계는 경악했다. 영유아 사교육의 부정성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발표되는 와중에 조기 인지교육을 제한하는 장치도 없이 방과 후 과정을 지원하겠다는 계획 또한 교사 대 아동 비율 감축 등 현장에서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문제를 제치고 어떻게 정부 주요 안이 될 수 있는가 의문스럽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5월 3일 서울 초중고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게 하는 조례를 통과시키며 오히려 정부가 사교육을 부추기고 영유아 시기부터 경쟁교육을 촉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어린이집은 0세반을 운영하여 빠르면 생후 2개월부터 기관 보육이 가능하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12시간의 보육을 기본으로 양육자가 원하는 경우 밤 12시까지 야간연장보육, 혹은 다음 날 오전 7시 30분까지 24시간 보육도 가능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스쿨버스를 운영해 등하원 서비스를 제공하나 교사 1인이 연령도 학급도 다른 수 명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도하기는 쉽지 않다. 초등학교 저학년도 학급 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제한하고자 하는데 0세 1:3, 1세 1:5, 2세 1:7, 3세 1:15, 4-5세 1:20인 유아교육기관의 교사 대 영유아 비율은 여러 심각한 안전사고의 주요 원인이 된다. 점심시간을 교육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일 평균 9시간 이상을 근무하며 스쿨버스 탑승 지도와 행정업무, 교육과정까지 운영해야 하는 유아교사의 열악한 상황은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영유아에 대한 교육과 안전에 대한 집중을 방해한다.

대통령은 지난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건강·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양육 환경을 만들겠다"라고 말했고 교육부 장관은 교육개혁을 말하며 “유보통합을 추진해 수요자 중심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재설계하고 늘봄학교를 통해 모든 아이가 원하는 시간까지 질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어린이와 그들의 부모, 교사에 대한 정부 기만은 이 정도면 명확하다. 겉으로는 “어린이가 행복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그럴듯하게 외쳐대면서 실상 이 나라의 교육정책은 어린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권리로서의 교육이 아닌 자본과 노동을 위한 서비스가 주 목적이다. 양육자가 자녀와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을 축소하여 노동력 결핍을 막고, 어린 시기부터 영유아를 인지교육에 내몰아 더욱 경쟁력 있는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출생한지 2-3개월 밖에 안 되는 영아는 기관에 맡겨놓고 산모를 다시 노동 현장으로 내모는 노동환경이, 노동 현장이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거추장스러운 자녀는 하루 12시간이든 24시간이든 원하는 데로 국가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발상이, 발생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안전사고인데도 노동자의 이른 출근을 포기할 수 없어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린 영유아를 통학차량에 한꺼번에 실어 나르도록 하는 것이, 그 어디에 영유아를 위한 행복과 안전이 있다는 것인가.

자녀를 낳고 기르는 부모를 존중하거나 귀히 여기지 않는 노동 문화, 노동하는 부모를 방해하는 짐짝처럼 취급받으며 어린 영아기부터 기관에 맡겨지는 양육 문화, 인지 중심의 경쟁교육을 부추기며 경쟁력 있는 도구만이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하는 사회 문화, 그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어떤 말로 포장해도 유년기를 부정당한 것이고, 그렇게 성장한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이 겪었던 삶을 투사한 것이 노키즈존이나 맘충과 같은 어린이와 양육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아닌가. 노키즈존과 맘충의 기저에 흐르는 영유아와 양육자에 대한 무시와 모멸은 자본과 노동을 앞세우며 영유아와 양육자를 존중하지 않는 지금의 노동환경과 양육문화가 양산한 또 다른 그림자인 셈이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어린이날은 어린이 강제노동 해방의 취지로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천도교소년회는 5가지 어린이날의 기조를 통해 어린이날의 의미를 규정했다. 첫째는 어린이에게 건강과 교육, 복지, 문화시설을 제공하는 것이고, 둘째는 어린이 강제노동을 폐지하고 경제적 억압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셋째는 어린이를 어른과 같이 사회적 주체로 인정하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넷째는 어린이를 사회개조와 문명창조의 주체로 존중한 것이고, 다섯 번째는 어린이를 한울님으로 공경하는 것이다. 이날 오후 1시 어린이들은 서울 종로 일대를 행진하며 어린이도 작지만 사람이며 어른과 어깨를 나란히 하나는 하나의 존재임을 온몸으로 선언했다.

올해는 어린이날이 최초 제정된 이후 102주년이 되는 해다. 어린이는 자본과 자본에 복무하는 노동을 위해 성인에게 해 줘야 하는 서비스의 일부가 아니다. 스스로가 하나의 주체이다. 어린이를 온전한 주체로 선언한 어린이날을 진정으로 기념하고 어린이의 행복을 말하려면 더 이상 어린이 정책에 자본과 노동이 주어인 “돌봄”과 “서비스”라는 단어를 최우선으로 사용할 순 없다.

어린이가 어디에 있어야 행복한지, 어린이가 누구와 함께 있어야 행복한지, 어린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어린이로부터 듣고 유아교육자와 소통하길 바란다. 어린이 정책은 행제정학자, 법학자, 교육학자, 복지학자 등 성인의 시선과 언어가 아니라 어린이 스스로의 언어와 그 언어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전달하는, 어린이 바로 곁에서 오늘도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유아교육자와의 소통을 최우선 하며 지향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적어도 2살까지는 영아가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가정양육지원을 강화하는 양육친화적 노동환경을 구축하고, 마을과 이웃에서 부모가 독박 육아로 고립되지 않도록 마을 단위의 공동육아 관계망을 촘촘히 설계하는 방식으로 어린이와 양육자를 지원해야 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기관 교육이더라도 12시간, 18시간, 24시간 노동과 자본이 원하는 만큼 어린이를 기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저녁 6시가 되면 어린이도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편성되어야 한다. 더 이상 어린이가 부모를 자본과 기업에 빼앗기고 양보해야 하는 서비스로서의 정책이 아니라, 0.78명으로 귀하게 태어난 어린이가 주어진 삶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내도록 하기 위해 기업과 자본이 부모인 노동자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러니 더 이상 어린이 정책을 자본과 노동을 위한, 자본과 노동이 주어가 되는 “돌봄”과 “서비스”로 명명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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